국회부의장을 지낸 해석(海石) 정해영 선생(1915∼2005·사진)을 기리는 송덕비가 13일 선생의 고향 울산에 세워졌다. 울산 등 지방 유학생을 위해 선생이 1955년 서울에 세운 사설 기숙사인 ‘동천학사(東川學舍)’ 출신 인사들이 50여 년 만에 마음을 모은 것이다.
송덕비는 이날 오후 선생의 고향인 울산 중구 남외동 장재마을 정지말공원에서 제막됐다. 제막식에는 박맹우 울산시장 등 울산의 주요 기관장과 국회의원, 송덕비 건립 공동추진위원장인 안우만 전 법무부 장관, 심완구 전 울산시장, 정우모 태영그룹 부회장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가로세로 각 2m인 비 건립에는 2500만 원이 소요됐다. 울산대 양명학 명예 교수가 글을 짓고, 서예가인 박석종 울산 강남교육장이 글을 썼다.
대저 사람의 한 생애는 어떻게 살아야 군자(君子)라 일컬어질까?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왕래정정(往來井井)이라 하였으니, 우물을 파서 오는 사람도 이 물을 마시고 가는 사람도 이 물을 마시게 하라는 뜻이다. 군자가 덕을 닦아 인재를 양성함에 항상 변함이 없어야 하고 그 기르는 인물이 무궁무진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해석 정해영 선생이야말로 실로 그런 군자가 아닐까 싶다. 선생은 영일 정씨로 고려조에 한림학사와 추밀원지진사를 지내신 시조 榮陽公 襲明의 28대손이며, 려말의 충신 포은 鄭夢周선생의 18대손으로 1915년 9월 19일(음력 7월 23일) 울산광역시 북구 진장동에서 아버지 久鎔공과 어머니 裵南邦여사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나셨다. 선생은 병영초등학교를 마치고는 스무 살에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셨다. 일본 유학을 꿈꾸었으나, “가업을 이어라” 는 부친의 만류로 꿈을 접었고, 스물한 살에 송옥자 여사(경남여고 졸)와 결혼을 하고, 스물두 살에는 부산으로 내려가서 정미소를 차리고는 미곡상을 겸하여 사업을 시작하셨다. 스물일곱에는 ‘대양-대동연탄’을 차리어 19공탄을 개발하였는데 사업이 전국적으로 번창하여 ‘석탄왕’이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얼마 안 가서 부산경남 지역의 최고 납세자가 되기도 하셨으니, 그 역량이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부자가 억 만금을 벌었다 해도 자신의 부귀영화에만 머물면 한갓 소인에 불과한 것.
나라가 6. 25 전란에 경제가 피폐하고 정치가 어지러워 국민이 도탄에 빠지자 선생은 분연히 일어나 정치에 투신하여 울산 을구에서 무소속으로 제 3대 민의원에 당선된 이후 제 10대에 이르기까지 울산과 부산에서 야당으로 무려 7선 의원을 하시는 동안 제 8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셨으니, 선생의 독보적인 정치역량과 애민정신이 아니고서야 어느 유권자가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지속적인 지지를 보냈겠는가?
해석 선생은 어릴 때 고향 울산에서 외솔 최현배 선생님에게서 “인재를 키워야 나라가 산다.”는 말씀을 들어 뼈에 새기고는, 1955년 서울 성북동에 ‘東川學舍’를 지어 울산 부산 출신으로 가난하여 서울 유학이 어려운 인재들을 불러 기숙케 하셨고, 노후에는 아들 在文 박사(5선 의원)가 이어받아 ‘재단법인 해석 정해영 선생 장학회’를 열어(2002년) 오늘 까지 번성케 하시니, 군자의 뜻이 대를 이어 빛난다 하겠다. 동천학사는 1980년까지 무려 500여명의 인재들이 공부하여, 장차관, 국회의원, 대법관, 광역시장, 교수, 정치가, 고급공무원, 상공인 등이 되어 울산과 부산 내지 중앙에서 지금까지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으니, 往來井井 하라는 옛 성인의 가르침을 해석 선생께서 몸으로 실천하신 결과가 아니겠는가? 이제 선생이 가신(2005년) 후 수년에, 동천학사 출신의 인사들이 모여 선생의 은덕을 돌에 새겨 영구불망(永久不忘)을 다짐하니 실로 아름다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찬(讚) 하노니, 미곡과 연탄으로 기업을 일굼이여, 이웃을 따사롭게 하려는 애민정인이로다. 야당으로 국회 칠선(七選)을 이룸이여, 충절한 조상의 혼을 잊지 않음이로다. 학사(學舍)를 세워 인재를 기름이여, 성인의 가르침을 몸으로 실천하심이로다. 은혜를 돌에 새겨 세세(世世)에 잊지 않음이여, 도(道)를 지켜 천년을 기약함이로다.
2012년11월13일
울산대학교 교수 문학박사. 남원후인 양명학 짓고, 울산광역시 강남교육장. 밀양후인 박석종 쓰고,
동천학사 동우회, 건립추진위원회 일동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