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희망제작소 뿌리센터, 2013, 성북동이 품은 이야기 -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들, 132쪽
“성북초교 삼거리 성곽 아래에는 울산 출신 학생들의 기숙사 ‘동천학사’가 있었다. 1955년 정해영 씨가 운영했던 동천학사는 지방 출신 학생들이 서울로 상경하여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정해영 씨가 건강상의 문제로 문을 닫기 전까지, 많은 학생들이 그 곳에서 고시공부를 하곤 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알았기에 학생에게 쌀값 정도의 소액만을 받으며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했던 곳이다. 1980년 철거되기 전까지 약 25년 정도를 꾸준히 운영했었다.”
송지영, 심지혜, 2011, 성북동 -잊혀져가는 우리동네 옛이야기를 찾아서3, 66쪽
성북초등학교 삼거리 성곽 아래에는 ‘동천학사’가 있었다. 학업을 위해 서울에 온 울산 출신 학생들의 기숙사였던 이곳은 부산에서 대동연탄을 세워 ‘석탄왕’이라 불렸던 정해영이 1955년 건립하였다. 고향 집 앞에 흐르던 동천강의 이름을 딴 동천학사는 1980년 철거 될 때까지 학생들이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장학회와 기숙사를 운영하여 다른 지역의 장학사업에도 영향을 끼쳤고, 동천학사 출신은 법무장관, 정치가, 기업가 등 각계로 진출하여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경상일보 - 동천학사와남도학숙,그인연과우연
재경울산향우회의 관심사 앞 순위에는 향토학사 건립문제가 있다. 따라서 호 남인맥의 산실로 알려진 남도학숙을 살피던 중에 낯익은 함자인 김창식 선생 을 만나면서 필자의 기억은 1975년 학창시절 친구 아버님으로 그분을 만났던 때로 되돌아 가 본다.
경상일보 - 동천학사와남도학숙,그인연과우연
재경울산향우회의 관심사 앞 순위에는 향토학사 건립문제가 있다. 따라서 호 남인맥의 산실로 알려진 남도학숙을 살피던 중에 낯익은 함자인 김창식 선생 을 만나면서 필자의 기억은 1975년 학창시절 친구 아버님으로 그분을 만났던 때로 되돌아 가 본다.